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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보다

마의 백광현 - MBC드라마

티스토리의 임시저장 기능은 항상 불만이다. ㅡ.ㅡ

금방도 거의 다 완료된 시점에서 프로세싱 오류로 자동저장 문서를 불러오니 백지만 나온다. 아직 IE의 기능을 다 몰라서 그런 나의 잘못도 있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개략 몇분정도의 텀을 주던지 아니면 히스토리를 볼수 있도록 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이런식으로 날린 글이 수십건이니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마의 백광현 드라마의 그 첫회를 보고 등장인물에 대해 이것 저것 조사를 해보았다. 실존인물도 있지만 허구의 인물도 많이 있다. 시나리오의 각색은 재미를 더하지만 너무 역사를 훼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마의 백광현에 대한 검색엔진의 결과는 다소 초라하다고 볼수밖에 없다. 여기에 조금 궁금증이 더해져서 조선왕조실록에서 그의 실제 행적을 찾아 보았다.

 


마의

정보
MBC | 월, 화 21시 55분 | 2012-10-01 ~
출연
조승우, 이요원, 손창민, 유선, 이상우
소개
수의사가 갖가지 난관을 거쳐 어의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펼칠 예정.

 

[드라마 마의 - 홈페이지 화면]

 

[드라마 마의 - 인물관계도]

 

[마의 백광현 역의 조승우]


검색엔진에서의 마의 백광현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의 어의이다. 처음에는 말의 병을 고치는 마의였으나, 사람의 종기도 침으로 째어 치료하는 외과적 치료법을 개발하여 많은 환자를 완치하였다.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숙미(叔微)이다. 독학으로 침술을 익혀 처음에는 말의 병을 고쳤다. 침술로 말의 병을 다스리는 데 자신이 생기자, 사람의 종기도 침으로 째서 독을 없애는 시술을 해 보았는데, 효험을 본 사람이 많았다. 그 후 마의(馬醫)에서 사람의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으로 전업하여 풍부한 임상 경험을 쌓았다. 독기가 강하고 뿌리가 깊은 악성 종기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리니 사람들이 신의(神醫)라 불렸다.

비록 의과방목(醫科榜目)에는 오르지 못하였으나, 뛰어난 종기 치료술로 현종 때 치종(治腫) 교수로 내의원 의관을 겸하였다. 또한 현종의 목에 난 큰 종기와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발찌와 부어오른 염증, 숙종의 목구멍 종기와 배꼽종기 등을 치료하였다.

1670년 현종의 병을 완치한 일로 다른 의원과 함께 한 품계가 더해졌고, 마침내 어의(御醫)에 올랐다. 1683년(숙종 9) 강령현감(康翎縣監)에 임명되었다가 이어 포천현감(抱川縣監)으로 옮겼다. 1691년에는 지중추부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숭록대부에 올랐다.

장지연(張志淵)이 '우리나라에서 피부를 째서 치료하는 법은 백태의(白太醫:白御醫)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 것처럼, 침으로 수술하는 외과적 치료술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다.

 [출처] 백광현 | 두산백과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의관(醫官)

내의원의관, 강령현감, 지중추부사, 숭록대부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숙미(叔微). 혼자의 힘으로 의술을 익혀 침술의 권위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말[馬]의 병을 치료하다가 사람의 종기를 침으로 완치시켜 명성을 얻었다. 현종 때 치종(治腫) 교수로 내의원 의관을 겸하였다.

또, 현종의 항종(項腫)과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발제종창(髮際腫瘡), 숙종의 후종(喉腫)과 제종(臍腫)을 침으로 치료하였다. 1684년(숙종 10) 강령현감(康翎縣監), 1691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듬해 숭록대부(崇祿大夫)에까지 이르렀다.

 


조선 숙종 때의 명의(名醫). 자는 숙미(淑微), 본관은 임천(林川). 인조 초에 출생. 처음에 침(鍼)을 가지고 의서(醫書)에 따르지 않고 말(馬)을 치료하다가 사람의 종기를 치료하기 시작, 국내에 명성을 떨쳤으며, 숙종 초에 시의(侍醫)가 되었다. 벼슬은 현감에 이르렀고, 천성이 순박하여 환자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잘 보아 주어 신의(神醫)라고 존경을 받았다.


위키백과

백광현(白光炫, 1625~1697년)은 조선 후기의 침의(鍼醫)이다. 본관은 임천이며 자는 숙미이다. 백광현은 종기의 외과적 치료술을 본격적으로 개발한 사람으로, 한의학에 외과적 치료술을 본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종기 치료사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는 침을 써서 종기를 절개해 독을 제거하고 뿌리를 뽑는 과격한 치료법을 썼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원래 말의 병을 고치는 마의(馬醫)였는데, 그는 말의 병을 오로지 침을 써서 고쳤고 의서는 보지 않았다. 침으로 말의 병을 다스리는 기술이 진보하자, 사람의 종기에도 시술해 보았더니 효험이 있었다. 그는 이내 사람의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으로 전업했고, 수많은 종기의 증상을 보면서 임상경험이 풍부해져 의술이 더욱 정심해졌다.

현종 때 내의원 의관이 되었다. 《현종개수실록》 11년 음력 8월 16일에 현종의 병이 회복된 것을 기념하여 내의원 의관들에게 가자(加資)를 하는데, 백광현의 이름이 처음 보인다. 그는 공이 있을 때마다 품계가 올랐고, 마침내는 어의를 지냈으며 현감까지 되었다. 1684년(숙종 10년) 음력 5월 2일에 왕은 그를 강령 현감(康翎縣監)에 임명했다가 이어 포천 현감(抱川縣監)으로 바꾸어 임명했다.

1691년에는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숭록대부에 올랐다.

1695년(숙종 21년) 음력 12월 9일 숙종은 백광현을 각기병을 앓는 영돈녕부사 윤지완(尹趾完)에게 보내는데, 이날 《숙종실록》은 “백광현은 종기를 잘 치료하여 많은 기효(奇效)가 있으니, 세상에서 신의(神醫)라 일컬었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종기를 치료하는 능력 때문에 내의원에 들어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정래교에 따르면 “종기를 절개해 치료하는 방법은 백태의(白太醫)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하였다.

장지연(張志淵)이 “우리 나라의 결렬의 법(상처를 찢어 치료하는 법)이 백태의로부터 시작하였다.”라고 한 바와 같이 그는 침에 의한 수술의 권위자였다.

  • 정래교가 지은 〈백태의전〉(白太醫傳).
  • 강명관 (2004년 1월 5일). 〈수만 백성 살린 이름없는 명의들 | 민중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 초판 12쇄, 서울: 푸른역사. ISBN 89-87787-74-5
  • 백광현”. Daum사전 - 문화원형 백과사전. 2008년 6월 17일에 읽어봄.
  • 의관의 주요인물 - 백광현”. Daum사전 - 문화원형 백과사전. 2008년 6월 17일에 읽어봄.

 


다음 문화원형

백광현의 본관은 임천이며 자는 숙미다.
그는 침을 써서 종기를 절개해 치료하는 방법을 써서 유명해졌다.
숙종 초에 어의에 뽑혀 공이 있을 때마다 품계가 더해졌고 여러 벼슬을 두루 걸쳐 현감이 되었다 


다음은 조선왕조 실록에서 그의 행적이다.

현개 23권, 11년(1670 경술 / 청 강희(康熙) 9년) 8월 16일(경자) 2번째기사
병환이 회복되어 약방의 관리들에게 상을 내리다

약방 도제조 허적에게 안구마를 내리고, 자질(子姪) 중의 한 사람에게 직책을 제수하게 하고, 아다개 하나를 내렸다. 제조 홍중보에게는 숙마 한 필과 아다개 하나를 내리고, 제조 김좌명과 부제조 권대운에게는 모두 가자하고, 부제조 강백년장선징에게는 각각 숙마 한 필과 표범 가죽 한 장을 내렸다. 의관 이동형(李東馨)·윤후익(尹後益)·김유현(金有鉉)·이후담(李後聃)·백광현(白光玹)에게는 모두 가자하고, 그 나머지에게는 차등있게 상을 내렸다. 성상의 병환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8책 31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5월 2일(정묘) 1번째기사
유헌·이선·이후정·윤덕준·정재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유헌(兪櫶)을 대사간(大司諫)으로, 이선(李選)을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이후정(李后定)을 사간(司諫)으로, 윤덕준(尹德駿)을 부수찬(副修撰)으로, 정재희(鄭載禧)를 도승지(都承旨)로 삼고, 의관(醫官) 백광현(白光玹)을 특별히 강령 현감(康翎縣監)에 임명하였다가 이어 포천 현감(抱川縣監)으로 바꾸었다. 의관의 수령(守令) 임명이 여러 번 중비(中批)에서 나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진실로 이미 만족하게 여기지 않았던 데다가 백광현이 미천(微賤)한 출신이고 또 글자를 알지 못하는 데도 별안간 이 벼슬을 임명하기에 이르렀으니, 사람들이 모두 놀랐으며 대론(臺論)이 거듭 일어났으나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8책 68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인물(人物)

숙종 30권, 22년(1696 병자 / 청 강희(康熙) 35년) 12월 7일(기축) 1번째기사
약방에서 입진하는 것을 허락하다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기를 청하니, 윤허하고 이어서 하교(下敎)하기를,
“요즈음 혹 신기(腎氣)가 허약할 것이라는 한 가지 의논이 있는데, 이것은 설파(說破)하지 않을 수 없다. 무오년9079) 에 크게 앓고 나서부터 일생 동안 삼가고 조섭(調攝)하는 것을 애쓰니, 이 말은 크게 제목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귀일(歸一)하여 약을 의논하라.”
하였다. 일전에 약을 의논할 때 노의(老醫) 백광현(白光玹)이 ‘성상의 환후는 신기가 허약하여 습담(濕痰)이 힘을 쓰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말하였으므로, 임금의 분부가 이러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9책 438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숙보 29권, 21년(1695 을해 / 청 강희(康熙) 34년) 12월 9일(정유) 1번째기사
영돈녕부사 윤지완에게 어의
백광현을 보내 치료하게 하다

임금이 명하여 어의(御醫) 백광현(白光炫)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완(尹趾完)이 있는 곳에 보냈다. 백광현은 종기(腫氣)를 잘 치료하여 많은 기효(奇效)가 있으니, 세상에서 신의(神醫)라 일컬었다. 이때에 이르러, 윤지완이 각병(脚病)이 있었으므로, 특별히 백광현을 명하여 가보게 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9책 406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조선왕조 실록에는 4건의 백광현의 행적이 나온다. 

두번째 행적인 숙종15권의 내용에는 백광현이 미천한 출신이고 글도 몰랐는데 현감의 직위를 2회나 부여하자 많은 논란이 일었지만 왕은 누구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고 현감의 직위를 주었다는 뜻이다. 이정도면 백광현은 정말 글을 몰랐다는 말이 되는데 실록의 원문에는 且不識字 라고 쓰여있다. 이를 해석해보면 '글을 모르는 것은 내버려두더라도~ '라는 정도의 해석이 되는데 진짜 글을 모른다는 뜻은 아닌 듯하고 정식적인 학문을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하다. 즉 당시 유교적 가르침이라는 사서삼경을 통해 과거에 입시하여 등용되던 정상적인 관리는 아니라는 말로 해석 할 수 있을 듯 하다.(저자 주)

백광현은 淑微라는 자을 가질 정도로 정확한 의술을 가졌음을 알 수 있는데 숙종은 그런 백광현을 상당히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

검색엔진상 그는 생년과 몰년이 미상이지만 인조 3년에 태어나 숙종23년까지 살았다는 설이 있다. 약72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장수한 사람에 속한다.

 


그가 제수받은 직위에 대하여 알아보자

1. 현감 : 동반 종6품 외관직 - 정원 138원(후에 122원으로 변경 됨)
   상위 직급은 각도 관찰사(종2품) = 부윤(종2품) > 대도호부사(정3품) = 목사(정3품) > 도호부사(종3품) > 군수(종4품) > 현령(종5품)
   황해도 강령과 경기도 포천은 현감의 직위이다.

2. 지중추부사 : 중추부의 정이품관직인 지사자리로 정원은 6원
   상위 직급은 영사(정1품) > 판사(종1품) > 중추부사(정2품) > 동지사(종2품) > 첨지사(정3품) > 경력(종4품) > 도사(종5품)
   중추부사는 반드시 4품의 실제 직위를 수행해야 받을 수 잇는 실직이다.
   공석의 경우는 승전한 의관과 역관을 30개월 한정직으로 제수하기도 하였다. <<<백광현은 현령을 마치고 진급한 뒤 이 케이스를 거친 듯 하다.

3. 숭록대부 : 동서반 문무관에게 주어지던 품계로 종1품의 상계이다.
   모든 품계는 상/하계로 구분되어지며 부르는 호칭도 각기 다른데 종1품의 상계를 숭록대부, 하계를 숭정대부라 한다.
   종1품 숭록대부는 종친(왕의 4촌이내)과 의빈(왕의 사위)에게도 주어진 품계로 부인은 정경부인이라고 한다.

4. 종1품의 직위 : 돈령부, 중추부 판사를 제외하고 겸직
   가. 종친부 : 군, 지종정경
   나. 의정부 : 좌찬성, 우찬성
   다. 충훈부 :
   라. 의빈부 :
   마. 돈령부, 중추부, 의금부 : 판사
   바. 규장각 : 제학
   사. 세자시강원 : 이사
   아. 세손강서원 : 사, 부
   자. 제언사, 비변사, 선혜청, 준천사, 교서관, 승문원, 봉상시, 종부시, 사옹원, 내의원, 상의원, 사복시
       군기시, 사섬시, 군자감, 장악원, 관상감, 전의감, 사역원, 선공감, 수성금화사, 사도시, 사재감, 전함사
       전연사, 소격서, 종묘서, 사직서, 경모궁, 제용감, 평시서, 전생서, 내자시, 내섬시, 예빈시, 전설사
      장흥고, 빙고, 장원서, 사포서, 사축서, 조지서, 혜민서, 도화서, 활인서, 와서, 귀후서, 문소전, 연은전
      영희전, 화령전, 장생전, 훈련도감, 양향청, 금위영, 어영청 : 제조

드라마의 내용상은 대제학(정2품)의 손자로 나오는 백광현.. 후일 할아버지보다 한 품계 높은 관직에 오르니 가히 대단한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의학드라마의 열풍 속에 세상을 살아가는 촌부로서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비록 드라마라 할지라도 정확한 고증을 통한 사실을 바탕으로 극적인 요소를 가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의 명의

노중례

백광현

양예수

유상

유홍기

윤선도

이제마

이헌길

이희헌

전순의

조광일

주명신

지석영

허목

허임

허준

홍익만

황도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