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를보다

제1계 제1조 - 만천과해 :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다.

제 1 계 승전계(勝戰計)

: 아군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구비되었을 때 취하는 작전.

1. 만천과해(瞞天過海) :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다. - 은밀하게 내일을 도모하라.

2. 위위구조(圍魏救趙) : 강한 적을 분산시켜 쳐부수다. - 정면공격보다 우회하라.

3. 차도살인(借刀殺人) :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다. - 직접 나서는 것은 초보자의 방법이다.

4. 이일대로(以逸待勞) : 쉬다가 피로에 지친 적과 싸운다. -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5. 진화타겁(袗火打劫) : 불난 틈을 타서 도적질을 한다. - 기회가 왔을 때는 벌떼처럼 공격하라.

6.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을 향해 소리치고 서쪽을 공격한다. - 상대방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라.



제 1 계 승전계(勝戰計)

: 아군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구비되었을 때 취하는 작전.


제 1 조  만천과해(瞞天過海) :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다. - 은밀하게 내일을 도모하라.

瞞天過海

'만천과해'의 원뜻은 하늘(황제)를 속여 무사히 바다(고난, 고비)를 건넌다는 뜻으로, 의역하면 상대 심리의 맹점을 찌르라는 것이다.

이 계략의 성공여부는 만(瞞)에 달려있다고 봐야 한다. 즉 속임수가 성공한다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뿐더러 대의적으로 명성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어줍지 않은 재주를 부리다가 일을 망친 셈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당연히 욕만 먹을 것이 당연하다.

더불어 만(瞞)은 바다라는 위협, 고난, 고비를 해쳐나가는 기본이 된다. 즉 목적은 바다를 건너는 것이며, 위협을 주는자는 하늘, 즉 황제 가 되는 것이다.

만천과해의 계책은 역사속의 수많은 지략가들이 적의 심리를 꾀차고 그 들의 무의식적인 의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가장하여 철저하게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계책인 것이다.

수 많은 예가 있지만 그 중에 유명한 일화는 태사자의 만천과해가 아닐까 한다.


시위를 당겨 적의 포위를 뚫다.

삼국지에서 북해 태수 공융(孔融)이 황건적들에게 포위되었을 때였다.

태사자(太史慈)는 포위망을 돌파하여 원병을 청하러 가야하는 사명을 띠고 있었다.

그는 활과 과녁을 두 기사에게 들리고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성안에 있는 군사나 성밖에 있는 적병들이 이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태사자는 태연히 말을 끌고 성 가까이에 있는 언덕에 과녁을 세우고 활쏘기 연습을 시작했다.

이윽고 연습이 끝나자 그는 다시 성안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이렇게 활쏘기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자 성밖에 있는 적병들 중에는 그것을 구경하는 자도 있고,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자도 있었다.

사흘, 나흘 그는 변함없이 이렇게 활쏘기를 계속하자, 적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관심조차도 갖지 않게 되었다.

                                    [태사자]


그때를 틈타 태사자는 갑자기 말 위에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비호처럼 적의 포위망을 뚫었다.

적들이 속았구나 하고 손을 쓰려 했을 때 그는 이미 멀리 가버린 후였다.


도망가는척 뒤를 치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또 있다. 이 일화는 36계의 여러가지 계책이 숨어있는 일화이기도 하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손책(孫策)이 수일을 연하여 회계성을 쳤으나 성은 좀처럼 깨어지지 않았다.

성벽은 높고 해자는 또한 넓고 깊었다.

손책이 무리를 모아 놓고 성 칠 일을 의논하니, 군중에 함께 따라와 있던 그의 숙부 손정(孫靜)이 계책을 말했다.

"
성이 원체 견고하고 왕랑이 또한 죽기로써 지키는 터이라, 이대로 쳐서는 깨뜨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 회계땅의 전량(錢糧)이 태반이나 사독에 있고, 그곳이 여기서 불과 수십 리니, 먼저 그곳을 점거하는 것이 어떨까?

이것이 이른바 '공기무비(攻其無備)요 출기불의(出其不意)', 그 방비 없음을 치고, 예상치 못한 때에 나아간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손책은 크게 기뻐하였다.

"
숙부님의 묘계로 족히 적을 깨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즉시 각문에 영을 내려 불을 밝히며 기호(旗號)를 많이 세워 의병(擬兵)을 삼게 하고, 밤을 이용하여 에움을 푼 다음 사독으로 가기로 했다.

그때 한 장수가 말했다.

"
주공께서 대군을 거두시어 떠나는 것을 알게 되면, 적이 필연코 성을 나와 뒤를 쫓을 것이니 기병(奇兵)을 쓰시는 것이 마땅할까 합니다."

"
내 이미 준비를 하여 놓았네. 회계성은 오늘밤 안으로 우리 장중에 들어오게 될 걸세."

손책의 군마가 물러갔다는 첩보를 받은 회계성의 장수 왕랑은 무리들과 함께 성루로 올라갔다.

성밖을 두루 살펴보니, 성 아래에 연기와 불이 함께 일어나며 무수한 정기(旌旗)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왕랑이 마음에 의심하기를 마지않을 때, 부장 주흔이 말했다.

"
손책이 겁을 집어먹고 군사를 거두어 달아나는가 봅니다. 그래서 정기를 휘날려 우리를 의심케 하는 것이니,

지금 곧 군사를 내시어 뒤를 치도록 하십시오."


이때 한 장수가 말했다.

"
손책이 이번에 간 것이 혹시 사독을 치기 위함이나 아닐까요. 일군을 따로 뽑아 뒤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랑은 드디어 뜻을 정하였다.

"
사독은 곧 우리의 둔량처(屯糧處)이니 아무래도 방비를 엄히 해야만 하겠소."

왕랑의 군사는 남으로 사독을 향해 급히 뒤를 쫓아 20여 리를 갔다.

때는 초경이 가까운데, 갑자기 밀림속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며 횃불이 일시에 일어났다.

왕랑의 군사들이 깜짝 놀라 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할 때, 한 장수가 창을 빗겨 잡고 말을 내달아 나오니 그는 바로 손책이었다.

이 싸움에서 왕랑은 크게 패하여 마침내 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는데,

이는 바로 상대를 속여 그 약점을 누르고 때를 보아 기습하여 전승을 거둔 예이다.


미친척 하여 복수하다.

손빈(손무의 손자로 손자병법을 완성하였다고도 한다.)과 방연은 귀곡자(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종횡가,

자신의 은둔지인 귀곡이라는 지명을 호로삼았다. 합종연횡의 소진과 장의도 그의 제자이다.)의 동문수학생들이다.

방연이 먼저 하산을 고하고 위나라의 군사가 되었다. 하지만 방연은 자신보다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손빈을 항시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였고

훗날 자신의 앞길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방연은 이런 손무를 하산시켜 그를 해칠 계책을 세운다.

위의 혜왕이 손빈을 밑어 부군사로 삼으려 하였지만 방연은 이를 방해와 무고를 서슴치 않았다.

한번은 제나라 사신이 와서 평소 흠모하던 손빈을 찾아가 제나라의 책사로 재능을 떨치라고 권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에 방연은 손빈을 모함하여 위왕에게 고하니 위왕은 손빈을 엄벌에 처하도록 명을 내렸다.

손빈은 빈형(무릎의 슬개골을 도려내는 형벌)에 처해진다. 방연은 손빈을 측은히 생각하는 것처럼 하여 손빈이 옥에서 병법서를 쓰게 하였다.

병법서가 완성되자 방연은 다시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손빈은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방연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방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는 쉬운일이 아니었다. 방연의 수많은 괴롭힘 속에서 손빈은 극한의 인내력으로 계책을 발휘한다.

손빈의 미친척은 극에 달했지만 의심이 많은 방연은 믿지 않았다.

손빈은 그럴수록 목숨을 걸고 미친짓(돼지변, 돼지죽, 우리속의 흙을 먹거나...)을 하기 시작했다. 방연도 그제야 손빈이 미친것을 믿게 된다.

이런 손빈의 기이한 행동은 주변 제후국에 그가 미쳤다는 소문을 낳게 하고, 제나라의 왕의 귀에 들어간다.

제왕은 순우곤에게 명하여 손빈을 탈출시킨다. 제왕은 손빈의 기개를 높이사게 되고, 대장군 전기의 군사로 삼는다.

이후 손빈은 수차례 전투에서 전승을 하며 공을 세우게 된다.

최후에는 마릉전투에서 방연을 사지로 몰아 자신의 복수를 하게 된다.


술에 취해 강을 건너다.

또 다른 만천과해의 출전은 <영락대전 - 설인귀정요사략(永樂大典 - 薛仁貴征遼事略)>에도 있다.

하지만 36계가 5세기 이전의 병법을 편작한 것이기 때문에 영락대전의 설인귀정요사략의 배경이 되는 당나라(618~907)시대의 일화는
 
오히려 청에의해 쓰여진 내용으로 36계의 내용에 부합되는 일화를 첨부하였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기왕 예를 들었으니 내용을 알아보자.

그 전에 영락대전은 어떤 책일까?



 영락대전(永樂大典)

해진이 명의 황제 영락제의 명에 의해 편찬된 중국의 칙찬 유서(類書)로 1404년 최초이름인 문헌대성(文獻大成)이 완성되고, 그 후로 

사본과 정본이 제작되었으며, 명조 말기에 화재와 도난 등으로 정본1부를 제외하고 원본과 부본은 소실되었다.

주요 내용으로는 경사자집, 제자백가, 천문, 음양, 의복, 승도, 기예 등의 여러책들을 수집하여 홍무정운에 따른 운자의 순서에 따라

배열하였으며, 그 서술 방식이 가나다 순과 같이 운(韻)에 따라 항목을 배열한 일종의 백과사전류라고 할 수 있다.

영락대전을 기초로 청의 사고전서의 편찬시 활용된바 있다. - 위키백과, 두
산백과사전


<진본 영락대전>



당태종(이세민 599~649, 중국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다.)이 벼르고 별르던 고구려 원정에 나서게 되었다.

30
만 대군을 이끌고 위세당당하게 중원을 가로질러 요동에 있는 고구려와의 실질적인 경계선인 요하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당태종이 요하를 건널 생각을 안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날씨가 안 좋아 강은 높은 파도로 넘실 거리고 소용돌이까지 보이고 있었는 데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강을 건너면 적지라 고구려와의 싸움 때문인지 영 강을 건널 생각을 안하는 것이었다

고구려 정벌군의 전방 사령관인 장사귀가 설인귀에게 당태종의 이런 심중을 말하자

즉시 설인귀는 당태종을 찾아가 아뢰었다.

"폐하, 이 지방의 호족 중에 유력인사가 군에 필요한 보급품과 함께 연회를 열어 폐하를 모시겠다고 하옵니다."

심기가 불편하던 당태종은 설인귀의 안내에 따라 그 호족의 집으로 가서 음주가무를 즐기는데 여러가지가 이상했다.

탁자가 수평을 못맞추고 출렁이거나, 앉은 자리도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당태종이 장막을 걷어 바깥을 내다보니

자신이 있는 집이 강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설인귀가 주저하는 자신을 호족의 집이라 속이고 집처럼 개조한 배에 태운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결과는 안시성에서 연개소문의 추격에 대패로 결론나지만, 즉 하늘당시 천자인 황제를 속여서 바다를 건넜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황제를 속여서라도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계(난관)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 본 뜻이다.

비슷한 말로는 맹룡과강(猛龍過江)이 있다용감한 용(龍)만 강을 건넌다는 것이다.


귀머거리로 행세하여 위안스카이(원세개 1859~1916)를 속이다.

중국의 애국지사이자 군사전략가인 채악 장군의 일화이다.

신해혁명 당시 운남 도독으로 있던 채악은 위안스카이(원세개, 초대 총통)가 신해혁명의 공로를 빼앟아 간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는데 장본인인 위안스카이는 채악을 경계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위안스카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채악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북경으로 데려와 더욱 경계의
고삐를 죄게 된다.

채악은 위기상황에서의 탈출을 준비하고, 반 원(위안스카이)세력을 구축한다.

위안의 앞에서는 귀머거리 행세를 하거나 잘 모르는 척 하고, 질문에는 횡설수설 하였다.

위안은 자신의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심복들을 보내 채악의 모든 재산을 압수수색하기도 하였다.

그에도 굴하지 않고 채악은 기생들과 어울리고 매일 술로 주사를 벌이며 자신의 부인조차도 속이고 있었다.

하루는 당시 최고의 기생 소봉선과의 염분을 빌미로 부인과 다투던 중 부인을 때리기에 이른다.

                  [위안스카이]

부인은 즉시 머리를 풀고 친정으로 떠난다. 이소식을 들은 위안스카이는 채악의 기이한 행동이 진심으로 믿게 된다. 채악은 기회를 보아 부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사람을 시켜 남방으로 피신 시킨다.

채악은 소봉선과 함께 유람을 떠나는 척하며, 비행기를 타고 천진에 도착하여 다시 일본으로 도항하게 된다. 고베에 도착한 채악은 미리 작성한 편지를 위안에게 보내고 채악의 친구를 통해 정기적으로 위안에게 우편을 발송하게 한다.

위안은 이런 일련의 상황속에서 철저히 채악이 일본을 유람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엇지만, 채악은 고베에 도착하자 마자 상해와 홍콩을 거쳐 운남으로 돌아갔다.

운남에 도착한 채악은 호국군을 조직하고 반 위안 세력진영을 구축하여 위안을 대만으로 밀어내기에 이른다.


어떠신가??

일련의 예를 보듯이 만천과해는 계책의 시작이자 전략의 기초이다. 순간순간 임기응변해야하는 현세를 살아가면서 과연 삼십육계의 제 1조로서의 계략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