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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보다

시콜스키사의 공격헬기 S-67(시제기)

2012년 10월 2일 : 일부 오탈자 수정, 세부내용 및 인용문 첨부 


 

 

시콜스키사는 1940년에 세계최초의 헬기를 만들어낸 회사이다. 최초의 헬기 이름은 S-47(R-4)로 불리워진 모델이다.

아래사진은 군납 헬리콥터의 효시 S-47(R-4)이다.

[S-47(R-4)]

 

[S-47(R-4B)]

S-47의 개량형 모델인 S-47(R-4B)의 모습이다. 큰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자세히보면 R-4는 시제기의 형태로 각종 측정장비가 붙어있는 Nose부분이 보이고 R-4B모델은 와이어프로텍션과 시콜스키 특유의 테일랜딩기어(당시명칭은 테일휠)가 후퇴되어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3로터브레이드의 성능도 향상되는데 나무재질에서 천을 덧댄형태로 개량되어 성능이 업그레이드 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넓어진 칵핏의 시야각을 확보하고 매인랜딩기어의 변화, 리코밍500엔진에서 시콜스키가 대대로 물려사용한 리코밍550엔진으로의 변화를 볼수 있다.

아래 사진은 1940년 군납이 이루어지던 시점의 R-4 초도인도기의 비행모습

[S-47(R-4B의 비행모습]

잠시 시콜스키에 대해 알아보면 1913년 세계 최초의 다엔진 고정익기인 'Russky Vityaz'를 설계하고 날게 만든 이고리 이바노비치 시코르스키가 1923년 미국으로 이민한 뒤에 설립한 항공기 제작사의 이름이다. 1930년대 대양횡단 비행정을 만들었고, 오늘날 헬리콥터의 원형으로 사용되는 로터의 형태를 개척한 VS-300을 설계하고 날게 만들었다.

1942년 VS-300의 설계를 수정하여 만든 헬리콥터가 S-47(R-4)로 세계최초로 대량 양산되었다.

 

[이고르 시콜스키와 부인 엘리자베스 시콜스키]

 

[최초의 비행전 VS-300에 오른 이고르 시콜스키]

고정익을 생산해오던 시콜스키사에서는 조종을 위한 3가지의 조종간의 순수한 이름을 짖게된다.

바로 지금 우리가 잡고 흔드는 스틱(당시에는 콘트롤 컬럼-조종기둥-이라고 불렀다.), 러더패달과 매인피치콘트롤레버이다.

고정익을 조종하시는 분들은 생소하지 않은 명칭이지만 회전익 조종사들은 현재 시콜스키사의 공식명칭으로 사이클릭(스틱), 콜렉티브, 러더 페달로 부른다.

[최초의 비행중인 VS-300의 이고르 시콜스키] 

1940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중요한 비행을 하게되는데 7월 18일 15분을 정지상태의 하버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 사진을 동판화를 뜬 인증서를 지금도 시콜스키항공기를 조종한 조종사들의 비행시간 인증서로 배부해준다.

물론 저자도 한장 가지고 있다.

 

같은 해 9월 6일과 10월 14일 까지 각각 15분과 14분 씩 각각 정지비행하였고, 시간당 30마일과 45마일을 비행하였다.

1941년 1월 고도 80~100피트에서 25분30초의 비행을 성공했다. 이 기록이 미국에서 회전익이 만들어낸 최장 비행시간 기록이었다.

 

[개량된 VS-300-2]

VS-300-2모델이다. 이렇게 양산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속력향상을 위한 노력은 진행되고 있었다.

 

 [이고르 시콜스키와 오빌 라이트]

S-47앞에서 포즈를 취한 두사람은 미국 항공역사에 한획을 그은 두사람이다.

좌측이 회전익의 선구자 이고르 시콜스키이고 우측이 고정익의 선구자 라이트형제의 동생인 오빌 라이트이다.

 

[하버링 중인 S-47(R-4)와 이고르 시콜스키]

 

이렇게 세기의 항공역사는 시작되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포스팅을 위해 시콜스키사의 회전익 양산 순서를 살펴보자

  • VS-300
  • 시코르스키 S-47 (R-4): 세계 최초 헬리콥터 (1940)
  • 시코르스키 S-48 (R-5/H-5): R-4보다 더 높은 적재량, 내구성, 스피드 그리고 상승고도로 설계된 헬리콥터 (1943)
  • 시코르스키 S-49 (R-6): 새로운 동체로 개선된 R-4
  • 시코르스키 S-51: 더 커진, 민수용 H-5.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증된 상업용 헬리콥터 (1946)
  • 시코르스키 S-52 (H-18/HO5S): 전부 금속 로터로 제작된 헬리콥터 (1947)
  • 시코르스키 S-55: 승객 10명 수송 헬리콥터(1949)
  • 시코르스키 S-56: 쌍발 엔진 헬리콥터, H-37A Mojave (1953)
  • 시코르스키 S-58: S-55 보다 더 커지고 발달한 승객 18명 수송 헬리콥터. ASW에서도 이용 가능한 VIP 버전 (1954)
  • 시코르스키 S-59 (XH-39): 2 H-18s가 터보샤프트 엔진 사용으로 전환됨. (1953)
  • 시코르스키 S-60: "플라잉 크레인(flying crane)" 시제기 헬리콥터, 1961년 실패 (1959)
  • 시코르스키 S-61: SH-3 시킹 ASW, SAR or 수송 헬리콥터(1959)
  • 시코르스키 S-61R: 후방 화물 램프로 재설계된 S-61; CH-3, HH-3 "졸리 그린 자이언트(Jolly Green Giant)", HH-3F 펠리컨 (1963)
  • 시코르스키 S-62: HH-52 해안경비 수륙양용 헬리콥터(1958)
  • 시코르스키 S-64: CH-54 Tarhe "플라잉 크레인(flying crane)" (1962)
  • 시코르스키 S-65: CH-53 시스탤리온 중/대형 수송 헬리콥터 (1964)
  • 시코르스키 S-67 블랙호크 : 공격 헬리콥터 시제기(1970)
  • 이후 모델은 추후 소개하는 것으로~
    <출처 : 위키백과>

    이게 뭔가??? 가만히 보면 같은 회사에서 다른 모델에 동일한 이름을 쓴 것 처럼 보인다.

    그것도 1970년에 사용한 Black Hawk라는 이름...

    그리고 공격 헬리콥터라는 특별한 이름...

    이 S-67을 이해하려면 하나의 전쟁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알게되는 또다른 헬리콥터...

    그렇다! 

     Bell사의 AH-1 코브라이다.

    [베트남전에서 활약하는 AH-1G 휴이코브라]

    미군은 베트남 전쟁의 양상에 따라 공격형 헬기의 양산이 절실했고 미국내 항공사들을 대상으로 실험용 공격헬기 YH-1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주 목적은 UH-1이로쿼이즈를 이용한 종심전투에서 착륙지점의 엄호임무를 위한 무장헬기의 필요성이었다.

    Bell사는 이미 UH-1 이로쿼이즈의 군납과 함께 1950년대부터 추진해오던 경험을 토대로 공격헬기 D-255의 컨셉 목업을 개발한다.
    D-255는 단순히 이로쿼이즈의 건쉽모델이었는데 1962년에 미육군에 공식적 UH-1B로 전시되기도 했다.

    그 후 UH-1B는 얇은 몸체의 두개의 시트를 가진 텐덤칵핏으로 개량되는데 동체의 전방(노즈)부분이 구체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Bell 207 Sioux Scout]

    1962년도에 모델47을 날렵하게 수정하여 Bell 207 Sioux Scout를 1963년도에 선보이게 된다.

    이 후 미육군은 AAFSS(Advanced Aerial Fire Support System-고급 공중화력지원시스템) 경쟁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록히드사의 AH-56 샤이엔과 같은 중무장 전장헬리콥터도 개발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Lockheed AH-56 "Cheyenne" 1967]

     

    [Lockheed AH-56A "Cheyenne" 1967]

     

    [Bell 209 prototype of the AH-1 Cobra ]

    초기모델에는 속도향상이라는 목적에 의해 스키드가 없었다.

    벨사는 1965년 US$100만불을 투입하여 벨209모델을 기초로한 AH-1 코브라 이로쿼이즈워리어 목업을 만들어낸다.

     


    바로 여기 AAFSS의 고급 공중화력지원이라는 말을 이해한다면 왜? S-67이라는 공격헬기를 시콜스키에서 만들게 되었는지 알수 있다.

    공중기병대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UH-1의 기동성은 당시의 전장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기술이나 다름이 없었다. 빠른 고정익은 있었지만 드롭쉽을 해내는 미군의 공중기병은 실제 보병을 단시간내에 적지 종심에 보내 적의 전후방을 동시에 교란해 내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전투기술이였기 때문이다.

    군생활을 하신 분들은 적지 종심작전을 개략 알고 계실 것이다. 근대전투에서 적진의 배후를 공격하는 기습공격은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수 밖에 없는 치명타이다.

    하지만 빠른 기동성에 불구하고 기동헬기는 인원을 태워야 하는 패널티로 무장능력을 잃게 마련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요구된 것이 바로 AAFSS인 것이다.

    작전을 펼치는 공중기병대=공중강습부대를 무사히 착륙목표지점까지 엄호해 가면서 위협이 되는 적의 지대공 무기와 진지들을 빠른속도로 쓸어주는 것이 공중화력지원이기 때문이다. 공군에서 지원하는 CAS와는 성격의 차이가 있음을 알아두자.

     


    그렇다면 S-67 블랙호크는 어떻게 생겼을까?

     사실 S-67은 AAFSS의 일환으로 개발된 것은 맞지만 순수하게 시콜스키의 연구기금으로 만들어진 모델이다. 아마도 AAFSS가 AAH(Advencd Attack Hericopter - 고급 공격헬기)사업으로 전환될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S-67의 기본이 된 모델은 동사의 S-66모델이다. S-66은 속도증가를 만들어내는 짧은 꼬리 날개를 가졌었다. 이 꼬리날개는 T55리코밍 터보샤프트 엔진과 함께 200노트(370km)의 속도를 250노트(460km)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드디어 1965년 2월 미 육군은 록히드사와 시콜스키사에 AAH프로그램을 위한 계약을 체결한다.

    [S-67 BlackHawk 시제기]

     시제기의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측면에 시콜스키의 고급 도장인 골드라인이 보인다. 5엽의 로터브레이드는 어마어마한 기동성을 부여했을 것이고 마스트와 로터 허브에서 보이는 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지금도 보기 힘든 미래지향형 모델임은 틀림없다. 후일 LHX(Light Helicopter) 프로그램에서 1995년 5월25일 처녀비행을 했던 RAH-66코만치의 모습을 보면 S-67의 로터시스템과 텐덤시트, 팬테일로터 등 많은 것들이 그대로 축소되어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RAH-66 코만치의 단면도]

    이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이 시콜스키가 지속적으로 공격헬기 사업을 추진해오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어쨓든 S-67 시제기는 1970년 8월 20일에 처녀비행을 기록했다.

    [지상표적을 제압한 S-67]

     정확한 무기는 알수 없으나 지상의 탱크 목업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약간의 그래픽이 첨가된 사진 인 듯하다.
    무장익이 없는 상태에서 발칸으로 연기를 낸다는 것은 약간 과장된 모습니다.

    [S-67 도장]

     무장 도색이다. 당시 이런식의 도안을 기획한 것은 벨사의 모델 409(후일 YAH-63으로 선정됨)에서 보이는 것처럼 개발의 컨셉으로 제시된 위장도안이었다.

    미육군은 베트남 전쟁 중에 위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역별, 용도별 도장을 모든 장비와 제복에 도입하는 계기를 만든다.

    사막용 도장은 이런 의미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하단 VCR 참조)

    [루프 턴 중인 S-67]

    [로터의 모양상 약간 신뢰가 않가지만 배면기동이라는 ㅡ.ㅡ]

    시콜스키 아니랄까봐 정말 기동성하나는 끝내주는 S-67이다.
    5엽의 로터가 만들어 내는 파워는 루프비행과 배면 기동도 일정시간 가능했다.

     

    [S-67 추락사고]

    S-67은 그 후 1974년 판보로우 에어쇼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이때 시험비행조종사 스튜어트 크레이크가 죽고 커트 캐논은 부상 후에 9일뒤 사망에 이른다.

     

     시콜스키의 시험비행은 지금도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이 사건과는 무관하지만 안면이 있었던 한국계 미국인 김용교관도 시콜스키사의 시험비행도중 순직했다.
    지면을 빌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시콜스키의 골든애로우 라인이 선명한 S-67]

    보조연료탱크를 장착한 S-67 Blackhawk의 모습

    시콜스키의 헬리콥터를 운용해본 조종사라면 이 비행기가 시제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대부분 보조연료탱크를 장착하는 페리미션형 항공기들은 모델의 타입은 같을 지라도 뒤에 따라 붙는 명칭이 추가되는 것을 잘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S-67 ESS모델 정도로 불렸을 듯 하다.(개인의 추측임.)

    통상 외부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심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 졌다는 결과로 볼 수 있는데 기본기의 모든 테스트는 이미 마치고 무장익의 성능을 측정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도의 개발비용이라면 시콜스키가 후에 AAH사업에서 누락되면서 다소간의 경영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사양과 최고속도를 갖춘 중무장 공격형헬기사업이었을 테니~

    사이드 와인더와 지뢰투척기를 장착한 모습

    [S-67의 특이한 무장익]

    무장익에 보이는 윙팁은 에어스피드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증속을 위하여 인입식 랜딩기어를 채택했고 30mm발칸, 2.75인치 라켓,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로 무장되었으며, 나이트비전과 움직이는 지형 디스플레이와 조작이 편한 라디오컨트롤 등을 갖추었다.

    당시에 시콜스키는 현재 UH-60 Blackhawk에 사용하고 있는 스테빌라이져를 이미 S-67에 적용시켰다.
    대단한 진보적인 항공기가 아닐 수 없다.
    스테빌라이져는 기계적인 매커니즘을 가지고 정지비행과 증속에 많은 영향을 주는 날개로 위 사진의 테일쪽에 수평으로 붙어 있는 날개형태의 일종의 콘트롤 판(타)이다.
    주로 사이클릭의 피치콘트롤과 콜렉티브의 상하운동에 반응해 양력의 흐름을 빠르게 유도해 주는 장비이다.
    (자세한 설명은 추후에~)

    엔진은 GE의 T58-GE-5 1500마력 엔진 두개를 장착했었다.

    당시 시험비행조종사 커트캐논과 바이런에 의해 1970년 12월 14일에 348.97km(217mph)의 세계신기록을 세운다.

    S-67 Blackhawk는 롤, 분할 턴, 루프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기동과 곡예기동을 하면서도 속도와 그 크기(22.6m)에 불구하고 매우 부드러운 반응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AH-1에 벨사의 코브라가 선정되면서 차상위 단계의 AAH사업으로 자연스럽게 이관된다.

    미육군의 헬리콥터는 드디어 공격형과 기동형으로 분리가 되는데 구 소련의 헬리콥터들은 공격성능과 무장병력을 동시에 수용하는 형태로 변화해간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동과 공격의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소비에트식 접근법은 일단 탈락의 위기를 격는다.

     AAH 사업은 중무장 대형 공격헬기 사업으로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는데 최종으로 선정된 기종은 YAH-63으로 휴즈헬리콥터, 맥도넬더글러스와 보잉방공체계의 컨소시엄이 선정되어 버린다.

     

    [YAH-63 serial 73-22246]

    이 모델이 후일 전세계가 두려워 하는 AH-64 아파치의 프로토타입모델(serial 73-22246)이다.
    역시 S-67처럼 사막도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벨의 모델답게 로터는 2엽이고 AH-1G타입의 상어를 닮은 Nose와 템덤 칵핏을 가졌으며, 인입식의 3개의 랜딩휠을 가졌다.
    무장익 역시 AH-1에서 유추된 형태이다. BGM-71 TOW와 2.75인치 라켓포가 보인다.
    1975년 10월1일 처녀비행을 시작했으나 안타깝게도 1976년 부숴지고 말았다. 이후 시리얼 73-22247 프로토 타입으로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 졌고 모델77(YAH-64)를 휴즈헬리콥터가 등장시키면서 비행을 중지하게 된다.
    모델77은 다음에 알아보기로 한다.

    자연스럽게 S-67은 AAH사업에서 밀리게 되고 후일 Blackhawk라는 명칭은 후일 미육군에 의해 UH-60으로 할당하게 된다.
    아무튼 사라질 뻔한 이름 Blackhawk는 최초 목적인 공격헬기의 이름은 아니지만 1974년도 미 육군의 전술 수송 항공 시스템 (UTTAS, Utility Tactical Transport Aircraft System)에 시콜스키가 참여하게 되는 계기로 YUH-60A의 선정을 이끌어 내었고 1978년 10월에 초도 보급되는 과정에서 Blackhawk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Blackhawk라는 이름에는 이런 우여 곡절이 들어 있는 것이다.

    생산을 못하고 일반적인 시제기보다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시콜스키사가 없었다면 헬리콥터의 현재는 없었을 것이다.
    역시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인가?

    동영상은 Sikorsky S-67 with FANTAIL 모델이다.

     

    팬테일모델을 만들었을 정도로 시콜스키는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이 모델을 애지중지 했음을 알 수 있는데 물론 공격헬기사업의 대가는 한 회사의 운명을 결정지을 정도로 컷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영상에서는  S-67의 모든 기동을 볼수 있다.
    저고도 침투비행
    루프기동
    180도 하향턴
    기동중 롤링 360도
    지금 만들어 지는 헬기에서도 보기 힘든 기동의 모습들이 선보인다. 한번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