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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보다

사도세자의 넋을 기린 화성 용주사


용주사는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가 깃든 왕보사찰이고 임금의 능을 수호하는 능사이다.


후일 정조 자신도 이곳 뒤에 묻혀 융.건릉이라 부르게된다.

다듬돌 삼간 문 중 중문이며, 가람과 속세의 경계를 알리는 중문이다. 일반적 사찰에서 보기힘든 형태로 왕이 친히 납시는 절만이 가지는 특혜로 삼간을 주었다.

3간문 앞에 작은 박석을 깔아 귀하신몸 어가에서 내려서시더라도 흙밟지않고 중문을 들게 하였다.

다듬은 돌을 두계단 올려 세워 위계를 더하고, 기둥석 다듬어 세워 솟을 문으로 품위를 높였다.

가람은 다시 3계를 두어 위계를 한단계 높인다.
속세보다 높고 신성한 곳이라는 의미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 주는 것이다.


중문 좌.우측의 해태는 우리 석물의 염원과 해학이 담긴 작품이다.
목재가 많은 구조로서 화재는 항상 경계해야하는 존재였기에 문의 입구에서부터 불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자들이 오는 손님마다 말하는것도 경망스러웠다.

신앙과 포교를 통한 불국정토로서 사부대중의 화합을 설법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조계종 문장.

특이하게 문간의 벽을 의장하다보니 인방이 초석에 들어가는 구조를 보인다. 
용주사에는 구석구석 이런 구조를 보이는데 이는 용주사의 건축에 궁궐대목들이 차출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문을 들어서면 다시 문 너비 만큼되는 자리에 퇴주가 서있다. 만약 퇴주가 없었다면..
지엄한 의장은 사라지고 기울어진 문짝만 보일 것이다.

삼간문 들어서면 멀리 천보루가 들어온다.


지어지고나면 임금이 먼저 오실곳이다.
당대 최고의 명필을 불렀을 것이다.

흐트러짐이 없다.

심득동시조종지
조종은 임금의 사후 호칭으로 왕이 되었어야하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이렇게 주련에 잘보이게 새겨두어 오시는 임금의 눈에 띄고 싶었으리라~




천보루 옆으로 회랑으로 늘어선 강당

천보루 사각주초 하단부

전석으로 마감한 모양새가 빈틍이 없다.

높은 돌계단의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아무나 통과하지 못하도록 인방을 걸었으리라~

누각의 마루바닥을 아래쪽도 다듬어 하늘처럼 구름넣어 단청하였다.
속세를 떠나면 바닥 밑의 바닥에도 하늘이 있다는 의미다.
수도하고 정진해서 다음 단계로 다시 그 윗단계로 가시라는 의미다.

이게 멋지다~
마루바닥짜는 장귀틀이다.
특이하게 동바리 사개짜고 장귀틀을 먼저 걸치고 다시 기둥 들어 올렸다.
연구대상이다.
마루바닥과 멀리보이는 강당의 높이차를 극복하고, 장주초석으로 가해지는 하중의 분산을 꾀하는 노림수 였을 것이다.





회랑에서 강당 진입부다.
장귀틀이 윈래 툇마루가 있었다가 없어진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기둥 하단 하방의 흔적을 찍어 보았다.
뭔가 행사를 위해 필요했던 장소를 행사가 끝나자 없엔 것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은 직책에 방이름을 쎃었다.

원래 이자리에 올 기둥이 아니었거나~
급한 용도로 문가를 구조적으로 문제가 되지않는 범위에서 걸쳤던가 할것이다.
사인검을 들던 별감들이 나무하나, 판자하나 걸치고서 높이서 내려 보았던 자리일지도~

수행승의 모습이 한가롭다.

용주사 본전이다. 조선 후기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팔작전각이다.
장대석기단이 위엄을 더한다.


기묘하다.
밀림과 짜맞춤의 결정판~

당간 지주돌









익공계 전각들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답다.

계단석으로 쓸 용도였을것이다.
석공들이 자르려다. 더 좋은 돌들을 보급 받았으리라.
덕분에 왕실석공들의 잔기술을 볼수있다.

사천왕 전각 옆에 있는 해태상의 읏는 모습~
해태는 무서움이 아닌 항상이로움을 주는 신의 사자이다.

옛 기와다. 전각이 많아 와장들이 무한정 찍고 구웠을것이다.




홍살문이 있다.

소소한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