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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보다

창경궁(昌慶宮)의 사계

昌 慶 宮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성종대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 2년(1624)년 이괄의 난과 순조 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홍화문]


[홍화문 전경]



[선인문전경]


[선인문]

선인문은 창경궁 남쪽으로 출입하는 문이다. 홍화문 남쪽에 있으며 방향은 동향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의복과 용품을 담당하는 상의원이 선인문 안쪽에 있었다.

창덕궁의 단봉문 처럼 주로 내시들이 사용하는 문이다.

역시 광해군 8년에 중건, 철종 8년(1857) 소실, 고종14년(1877) 복구하였다.

옛 이름은 서린문(瑞燐門)이라 했고, 솟을 지붕이었으나, 고종때 재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선인문은 궐내각사와 동궁권역이 소재하고 있어 세자(세손)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원들이 출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