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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보다

페라리를 능가했던 'Alfa Romeo'


[펌]스포츠서울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퍼왔습니다.
 
이태리 혈통 ‘Alfa Romeo’…페라리를 능가했던 밀라노 귀족세단


1.알파로메오의 '비스콘틴' 가문 엠블럼


[스포츠서울닷컴|서종열기자] “한때는 BMW도 우리 앞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세계 3대 명차 메이커로 불리는 BMW를 이처럼 가볍게 여기는 자동차브랜드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혈통의 알파로메오다.

알파로메오는 사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메이커다. 아직까지 단독으로 수입하고 있는 딜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지난 1997년 ‘가장 갖고 싶은 차 1위’에 선정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메이커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유럽 레이싱대회를 휩쓸었으며, 신화적인 레이서들을 배출했던 스포츠세단 메이커 알파로메오를 파헤쳐 봤다.


2. 최초 창업자 겸 엔지니어 까발리에 메로시

◆ 밀라노의 젊은 귀족들, ALFA를 세우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는 사실 1900년대만 해도 자동차업계의 변방지역이었다. 그나마 있던 이탈리아 혈통의 자동차업체는 1899년 설립됐던 피아트와 1906년 설립됐던 란치아가 유일했다.

알파로메오는 이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 당초 프랑스의 기업가인 알렌산더 다라크(Alexandre Darracq)가 1906년 설립했던 자동차조립회사 SIAD(Societa Italiana Automobili Darracq)를 밀라노 귀족이었던 까발리에 메로시(Cavaliere Merosi, 엔지니어)와 그의 친구 안또니오 산또니(Antonio Santoni)가 인수하면서 ‘롬바르다 자동차 제작 주식회사(Anonima Lombarda Fabrica Automobili : A.L.F.A)’로 변경했다. 알파로메오의 ‘알파(ALFA)’가 탄생한 것이다.

메로시는 알파 설립 이후 곧바로 24HP라는 양산차를 생산했지만, 회사는 재정난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알파를 1915년 이탈리아의 실업가 출신 엔지니어인 니콜라 로메오(Nicola Romeo)가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는 세계 1차대전이 한창이어서 알파로메오는 승용차가 아닌 군수물자인 트럭과 엔진 등을 생산했다.


3.최초의 양산차 24HP와 전성기의 시발점이었던 6C 2500S

1차대전이 끝나고, 로메오는 회사 이름을 ‘니콜라로메오 자동차’로 바꾸었다. 그러나 알파시절에 사용하던 엠블럼은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회사 이름이 아닌 ‘알파로메오’로 불리기 시작했다. 알파로메오의 엠블럼은 독특한 문양이 인상적인데, 이 문양은 이탈리아 밀라노 귀족가문인 ‘비스콘틴’ 가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알파로메오는 사실 레이싱업계에서 신화적인 레이서들을 배출한 메이커로 명성이 높다. 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도 1920년대까지 알파로메오의 드라이버로 활약했을 정도며, 이후 여러명의 레이싱 전설들을 배출했다.


4.1954년형 쥴리에타(좌)와 62년형 알파수드

◆ 전성기 맞은 알파로메오, 내놓은 차마다 히트

알파로메오는 그러나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된 경제 공황의 그늘을 피해지는 못했다. 결국 1933년 IRI에 인수된 알파로메오는 경영진과 종업원이 반반씩 지분을 보유하는 국민기업 형태로 운영되게 된다.

여기에 세계2차대전이 터지면서 알파로메오는 다시 군수물자를 생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알파로메오의 공장들은 자연스레 연합군의 폭격 목표가 됐고, 알파로메오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이후 어려움을 겪던 알파로메오는 50~60년대 거치면서 재도약을 시작한다. 1946년형 모델을 계승한 6C 2500S가 시작이었다.
여기에 1950년에는 최초의 모노코크 방식의 세단인 1900을 선보이면서 전성기를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특히 1954년 발표된 쥴리에타는 독특한 디자인과 작지만 강한차라는 알파로메오의 이미지를 구축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50~60년 당시에 생산됐던 알파로메오 차량들은 사실상 페라리의 디자인을 맡았던 피닌파리나와 베르토네가 디지인을 맡았다. 이 때문에 알파로메오의 당시 차량들을 보면 누가 디자인을 했는지 금새 알수 있을 정도다.

1970년대 초에도 알파의 성장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탈리아 남부의 새 공장에서 1972년 내놓은 알파수드(Alfasud)는 앞바퀴 굴림이었지만, 성공적이었고, 뒤를 이어 알페따(Alfetta), Alfa 6, GTV6 등이 출시됐다. 알페따와 쥴리에따를 대치한 Alfa 90과 Alfa 75는 알파로메오 최후의 뒷바퀴 굴림 방식의 자동차로 남는다.


5.좌측라인 Alfa 155, 146, 164와 우측라인 차세대 alfa 147, 156, 166

◆ 계속되는 재정난에 87년 결국 피아트그룹이 인수해

독특한 디자인과 고성능으로 70~80년대까지 최고의 자동차란 찬사를 받은 알파로메오였지만, 계속되는 재정난은 고민거리였다. 이런 가운데 80년대 중반 알파로메오는 다시 재정위기를 겪게 된다.

인수합병 시장에 알파로메오가 다시 나오자 외국계 자동차업체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BMW에 이어 포드가 인수전에 참여했을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알파로메오의 주인이 된 곳은 같은 이탈리아 혈통의 피아트였다. 이 때문에 자동차애호가들은 소형차 위주의 피아트로 인해 알파로메오의 아이덴티티가 손상될까 우려했다. 하지만 피아트그룹은 자사의 소형차와 계열사인 란치아 사이에 알파로메오를 끼워 넣어 스포츠세단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지켜갔다.

피아트그룹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알파로메오는 80년대 후반 피닌파리나의 디자인에 빛나는 Alfa 164 모델을 개발한다. 피아트, 란치아, 사브와 공동 프로젝트로 개발된 이 모델은 이탈리아 북부공장에서 생산된 최초의 전륜구동 차량이 됐다.

이어 Alfa 155, Alfa 145, Alfa 146, GTV, Spider 등이 연이어 발표됐고, Alfa 147, Alfa 156, Alfa 166 등도 선보였다.


6. 2009년형 8C 스파이더-2009년형 Brera S-2009년형 MI.to-2010년형 159

이런 노력 덕택일까. 최근의 알파로메오는 부흥의 기틀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대량생산되는 차량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알파로메오의 강력한 성능을 모르지만, 끊임없는 개선 노력이 이어지면서 스포츠세단의 황제로 군림했던 옛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어서다.

삼각형의 독특한 전면디자인에 이탈리아 귀족의 엠블럼을 가진 알파로메오. 알파로메오의 질주가 기대된다.

snikerse@media.sportsseoul.com